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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랜덤박스 최고처분' 내렸다는 공정위의 외침이 공허한 까닭

2017년 08월 24일(목)
정우진 기자 chkit@c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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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김상조, 이하 공정위)가 지난 17일 일부 업체의 '랜덤박스' 판매에 대해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문제의 ‘랜덤박스’는 일본에서 시작됐다.

1907년 한 백화점에서 전통 복주머니인 ‘후쿠부쿠’에 다양한 상품을 넣어 일정금액에 판매하는 이벤트였는데 재고 처분을 노리는 판매자는 물론, 행운과 즐거움을 기대하는 소비자에게도 호평을 받으며 세계로 퍼졌다.

국내에서도 애플의 리셀러인 프리스비나 스타벅스 등 다양한 업체들이 이벤트성으로 랜덤박스를 도입한 후 2017년 현재 4만3천여 개가 넘는 상품이 포털사이트에서 확인될 정도다.

하지만 '확률형' 제품이고 개봉 전까지 내용물 구성을 알 수 없는 까닭에 많은 소비자들이 피해를 지속적으로 호소해왔다. 올들어 소비자고발센터에 접수된 피해사례가 100건에 육박하고 1372소비자상담센터 신고 사례도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소비자들은 이들 업체가 불리한 후기를 삭제하는 한편 환불 요청도 거절하고, 실제 고가의 제품을 판매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문제제기를 지속해왔다. 

소비자들이 줄곧 품어왔던 의혹에 대해 공정위가 영업정지 처분으로 답을 제시한 셈이다.

공정위는 우주마켓(우주그룹), 워치보이(더블유비), 타임메가(트랜드메카) 등 3개 시장 선도업체가 판매하지 않는 제품을 허위 표시하고, 불리한 후기를 삭제하는 한편 소비자의 환불 요청도 거절하는 등의 불공정행위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에는 소비자 기만성이 상당하다며, 과거 과태료에 그쳤던 전자상거래법 위반 징계 수위를 뛰어넘어 3개월 간 관련 상품 영업을 정지하는 등 최고수준의 시정조치를 부과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공정위 조치는 랜덤박스 제품과 관련한 최초의 징계 선례가 만들어진 것에 큰 의의가 있다. 무엇보다 공정위가 ‘강력한 처벌’이라는 뉘앙스로 처분 결과를 알림에 따라 많은 언론이 보도자료를 기반으로 랜덤박스 업체의 영업정지 사실을 보도하기도 했다.

그런데 처분 발표 일주일이 지난 현재 사과문은 3개 업체 중 워치보이 단 한 업체만 게재했으며, 가장 강력한 처벌은 받은 우주마켓은 지금도 여전히 랜덤박스를 판매하고 있다.

의아한 마음에 공정위 관계자에게 문의하자 “의결서가 업체에 전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업체가 아직 조치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라며 “의결서 송부에는 40일 정도 걸린다”는 답이 돌아왔다. 워치보이는 의결서 송부 전 자발적으로 처분을 이행했다는 것.

또 “의결서를 송부받은 이후라도 이들 업체가 처분을 이행할지 소송을 진행할지는 불확실해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공정위가 '전례 없는 최고 처분'이라고 강조하며 보도자료를 배포했던 것에 비하면 뭔가 김이 빠진 듯한 전개다.

인터넷 시대에 전자문서도 있고 유선 통보도 가능할 텐데 아무리 행정의 절차가 있다지만 40일 간의 틈을 타 문제 업체는 여전히 영업을 할 수 있고, 그 사이 또 다른 소비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은 여간 찜찜한 게 아니다.

일각에서는 영업정지 자체가 강력한 처분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3개월 간 영업 정지가 온라인몰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닌, ‘랜덤박스’ 제품 단 하나만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이다. 결국 소비자를 기망한 업체는 랜덤박스가 아닌 다른 상품을 판매하는 데는 전혀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다.

공정위는 '전자상거래법 상 명시된 처벌'이라고 설명하지만 법에서는 '온라인몰 운영 일부는 물론 전체에 대한 처벌도 가능하다'고 규정돼 있다. 그럼에도 일부에만 영업정지를 적용한 덕분에 3개 업체는 여전히 성업 중이다.

공정위는 강력한 처분이라고 자평했지만, 그 이후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랜덤박스 판매업체들이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정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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