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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뚫린 소비자규정] 급발진 사고는 무조건 운전자과실?...EDR 공개 유명무실

2018년 07월 13일(금)
박관훈 기자 open@csnews.co.kr
소비자가 물건을 구매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분쟁들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 등 업종별로 마련된 소비자법을 근거로 중재가 진행된다. 하지만 정작 그 규정들은 강제성이 없을 뿐 아니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빠른 시장 상황을 담지 못해 소비자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은 올 하반기 동안 2018년 기획 캠페인 '구멍 뚫린 소비자보호규정을 파헤친다' 기획 시리즈를 통해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의 문제점들을 짚어보고 개선 방향을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 사고 직후 시동 꺼도 엔진 계속 돌아가 창원시 합성동에 사는 조 모(여)씨는 올해 3월 자신의 재규어 XF20D 차량을 운행하다 급발진 추정 사고를 당했다. 공원 주차장에 진입하던 중 갑자기 차에서 굉음이 나면서 앞으로 돌진했다. 브레이크를 밟아도 차가 멈추지 않았고, 급기야 차체가 돌면서 보도 블럭을 넘어 잔디밭위에 올라갔다. 차는 소나무를 들이받은 후에야 멈춰 섰고, 시동을 꺼도 엔진은 계속 돌아갔다. 하지만 업체측은 자체조사 결과 급발진이 아니라는 판정을 내린다. 조 씨는 “당시 블랙박스가 꺼져 있고, 공원에도 CCTV가 없어 급발진 판정을 받지 못했다”면서 “차안에 탑재돼 있는 EDR(사고기록장치)을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고 억울해 했다.

# 전기차 후진 급발진 두 차례, 원인은 운전자 과실? 울산시에 사는 유 모(남)씨는 올해 3월 르노삼성 트위지를 운행하다 2번의 급발진 사고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한 번은 차에 키를 꽂고 전원을 넣자마자 후진으로 급발진하여 뒤에 있던 차량 범퍼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또 한 번은 약한 오르막길에서 신호대기 중 차가 뒤로 밀려 엑셀을 밟자 또 다시 후진 급발진 현상이 일어났다. 이 사고로 병원 통원치료를 받았다는 유 씨는 “업체 측은 운전자의 과실로 판단하고 마땅한 보상이나 대응이 없는 상황”이라며 “급발진 의심 현상이 발생해도 개인이 차량의 결함을 증명하기 힘든 상황에서 업체 측의 보다 명확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급발진 의심 사고, 제조사는 EDR 판독 요구 ‘거절’ 포항시에 사는 최 모(여)씨는 지난 5월 자신의 차량을 운행하다 급발진으로 의심되는 사고를 경험했다. 사고 직후 제조사인 현대차에 사고분석을 요구함과 동시에 사고기록장치(EDR) 판독을 요청했다. 며칠 후 판독 결과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판독 결과지를 요구했지만 “교부할 의무가 없다”며 거부당했다고. 최 씨는 “자동차관리법에 의하면 판독 결과를 요구하면 제공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업체 측은 법이 개정된 이후에 팔린 차량에만 해당되는 내용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 제약이 있는지 믿을 수 없다”고 의아해 했다.

급발진이 의심되는 차량 사고를 당한 운전자들이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가 많다. 정황상 급발진이 확실하지만 제조사로부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민원들이다.

실제로 국내에서 차량 결함에 의한 급발진 판정 사례는 단 1건도 없는 상황이다. 국내에서는 급발진 판정을 제조사가 진행하기 때문에 소비자는 이를 따라야 하는 구조다. 소비자가 급발진 피해를 제기해도 제조사로부터 ‘운전자 과실’ 판정을 받는다면 보상받을 길이 요원하다.

정부는 자동차 급발진 의심사고의 원인 규명을 위해 지난 2015년 12월 사고기록장치(EDR)의 데이터를 공개하도록 하는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을 시행했다.

EDR(Event Data Recorder)은 자동차 에어백과 연결된 전자제어장치인 ACU(Airbag Control Unit)에 들어 있는 저장 장치이다. 충돌 사고가 발생하면 에이백이 터지면서 충돌 당시의 상황을 저장한다.

정부는 사고기록장치 데이터 공개가 급발진의 원인을 가려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EDR 설치 의무, 공개 항목 규정 없어 ‘반쪽짜리’...OBD-Ⅱ 단자 활용도 대안

하지만 일각에서는 해당 법안이 자동차 급발진 의심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우리나라는 EDR 설치 의무가 없을뿐더러, 공개 항목도 정해놓지 않아 책임소재 규명이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지난 2012년 9월부터 자국에서 판매되는 승용차에 EDR 장착을 의무화했다. 또한 가속페달 개도량 등 15개의 운행정보를 사고 5초 전부터 기록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는 EDR 설치 의무가 없다. 국내의 경우 자동차 제조사가 EDR을 장착하지 않으면 EDR 공개 의무 법안을 적용조차 할 수 없는 셈이다.

더욱이 공개하는 운행 정보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규정이 없어 책임소재 규명에 이용하기 어렵다. 국내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에는 주행속도와 제동페달, 가속페달의 작동 여부를 저장하라고만 정하고 있다.

이 같은 이유로 EDR 설치를 의무화하고 공개하는 데이터의 구체적인 항목을 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급발진 원인 규명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가속페달 작동량과 제동페달 작동 유무 등을 공개 항목으로 강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또한 EDR의 경우 자동차 제작사에서 에어백이 터질 때 전개 과정을 보기 위해서 만든 장치이기 때문에 에어백이 터지지 않으면 EDR 데이터가 생성되지 않는 허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업계에서는 EDR에 대한 대안으로 OBD(On-board Diagnostics)-Ⅱ단자의 활용도 제안되고 있다”면서 “OBD-Ⅱ 단자는 2009년 이후 생산된 모든 차량에 장착돼 있는데, 가속페달 작동량과 엔진 회전수, 차량 속도 등 20여가지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어 보다 정확한 급발진 원인 규명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박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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