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시흥에 사는 권 모(남)씨는 지난 1월 메르세데스 벤츠 전기차 EQE를 장기렌트로 계약했다. 두 달 후부터 차량에 경고 메시지가 떠 정비소에 입고했고 전기 배선 교체가 필요하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그러나 부품 수급 문제로 최소 두 달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권 씨는 “새 차나 다름 없는데 부품이 없어 두 달 넘게 정비소에 맡겨야 한다는 게 속상하다”고 토로했다.

# 경기도 평택에 사는 정 모(남)씨는 지난 6월 기아 ‘스포티지 하이브리드’를 몰다 사고를 당해 서비스센터에 차량을 맡겼다. 부품 중 '컨트롤 유니트-버추얼 엔진 사운드 시스템'도 교체가 필요한데 현재 공급되지 않아 한 달 이상 기다리는 상황이다. 업체에 소요 기간을 묻자 ‘반도체 공급 문제로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고 전했다. 정 씨는 “법인차량인데 수리가 지연돼 업무에 막대한 지장이 발생하고 있다. 산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자동차가 부품이 없어 이렇게 대기해야 한다는 게 기막히다”고 지적했다.
# 용인에 사는 김 모(여)씨는 지난 2020년 7월에 산 폭스바겐 티구안 수리 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다. 지난해 11월, 2열 좌석 문이 잠기지 않아 도어락 수리를 받았는데 올해 5월 또 같은 문제가 발생해 AS를 받았다. 한 달 뒤에는 운전석 도어락마저 잠기지 않는 문제로 서비스센터를 방문해야 했다. 하지만 국내는 물론 독일에도 해당 부품이 없어 최소 한 달 이상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게 됐다. 김 씨는 “출고된 지 4년밖에 안 된 차량인데 부품이 없어 수리를 한 달 이상 기다려야 한다니 황당하다”고 꼬집었다.
# 경기도 용인에 사는 강 모(여) 씨는 올 상반기 랜드로버 디스커버리에서 배터리 결함 문제가 생겨 서비스센터에 입고했다. 담당자는 교체해야 할 모듈 부품이 국내에는 재고가 없고 영국에서 들여와야 해 수리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강 씨는 “리스한 차량인데 언제 수리가 되는지도 말을 안 해주면서 무작정 기다리라고만 한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 청양에 사는 김 모(남)씨는 지난 6월 현대자동차 ‘투싼’의 사이드미러가 파손돼 인근 서비스센터를 방문했다. 그런데 전국적으로 해당 차량의 사이드미러 재고가 없다 해 기다린 게 한 달여라고. 장마를 앞둔 터라 수리가 늦어지는 게 걱정된 김 씨는 업체 측에 지속적으로 빠른 수리를 청했지만 ‘빠르게 조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뿐이라고. 김 씨는 “사이드미러를 제대로 보지 못해 창문을 열고 주행할 때가 많다. 장마가 시작되면 창문도 열 수 없는데 무작정 기다려야만 하는 것인가”라며 답답해했다.

AS에 필요한 차량 부품이 없어 수개월 간 수리가 지연되면서 불편을 겪는 소비자 호소가 끊이질 않고 있다.
출고한 지 1년도 안 된 차량도 예외가 아니다 보니 구조적인 해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15일 소비자고발센터(www.goso.co.kr)에 따르면 부품이 없어 수리가 지연되는 사례는 고질적인 자동차 민원 중 하나다. 연식이 오랜 차는 물론 1년이 채 되지 않은 신차도 부품이 없어 AS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부품 수급 일정도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아 이도저도 못하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더 크다. 판매는 차질없이 진행하면서 부품만 공급이 더딘 상황도 소비자들은 이해가 어렵다고 주장한다.
특히 수입차 브랜드는 서비스센터 수가 국산차에 비해 적다 보니 이같은 문제가 더 잦다. 부품 공간 확보, 비용 절감 등 사유로 국내에는 필수 부품 위주로 두고 기타 장비는 해외 본사에서 때마다 수배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국산차 역시 지난 몇 년간은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면서 물류 대란과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이 겹쳐 부품 수급에 악영향을 받았다. 지난해 코로나19가 종식됐지만 부품 조달 문제와 부품 협력사 인원 이탈 등 사유로 정상화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모습이다.
무상수리기간과 부품의 공급 기간이 명시된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 제49조의3을 보면 ‘자동차 제작자는 자동차의 원활한 정비를 위해 단종 후 8년 이상 정비에 필요한 부품을 공급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소비자분쟁해결기준도 이와 같다.
자동차업체들은 부품이 없다기보다 고장이 자주 발생하지 않는 부품의 경우 입고 후 순서대로 AS가 진행되기 때문에 시간이 지연될 수 있다고 해명했다.
KG모빌리티 관계자는 “위 사례의 경우 재고가 있었지만 현장에서 소통이 제대로 안 된 사례였다. 생산업체랑 계약이 종료돼도 차질이 생기지 않게끔 준비한다”고 말했다.
현대모비스 측은 “결함 발생 확률이 낮은 부품은 소량으로 발주·입고한다. 순서대로 AS에 사용하고 다시 발주하다 보니 지연이 발생했다. 재고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엔지니어가 부품 신청을 누락하는 경우도 간혹 발생해 차주가 블루핸즈 등에 직접 결품을 청구하면 조금 더 빠르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입차 제조사는 부품 입고 문제로 수리가 지연되더라도 이를 제재할 수단이 없어 소비자는 사설센터를 이용하거나 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제조사에 귀책사유가 있을 경우 그 기간만큼 대차 서비스를 제공받는 정도인데 이 역시 의무는 아니다.
전문가들은 제조사들이 결함 발생 빈도를 고려해 차종별 부품 재고를 적정 수준으로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정주 한국자동차소비자연맹 회장은 "불량 발생률 등을 고려해 자사 차종별 부품의 적정 재고를 평소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박인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