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플랫폼들이 앞다퉈 ‘친환경 배달’을 내세우며 다회용기 서비스를 확장하고 있지만 정작 이용 과정에서는 회수 지연과 관리 공백으로 소비자 불편이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장 규모는 빠르게 확대되고 있으나 실제 운영 체계는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며 현장의 혼선이 커지고 있는 모습이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에서 다회용기 배달 주문량은 지난해 12만8149건으로 집계돼 2021년 대비 약 80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경기도 내 다회용기 주문건수도 2021년 3394건에서 41만2873건으로 늘었다.
배달 플랫폼과 지자체가 추진하는 친환경 정책 영향으로 서비스는 급속히 확산되고 있지만 ▲회수 지연 ▲위생 우려 ▲책임 주체 불명확 등 구조적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현재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 요기요 등 배달앱은 잇그린의 다회용기 순환 서비스 ‘리턴잇’과 협업해 다회용기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리턴잇은 서울 20개 구를 비롯해 경기 10개 도시, 인천 2개 구, 제주시까지 서비스 지역을 넓히고 있다.
①사용자는 배달앱에서 주문 시 다회용기를 선택한 뒤 ②수령 후 음식물은 꺼내고 용기 뚜껑을 닫아 전용 반납 가방에 넣는다. ③가방에 부착된 QR코드를 스캔해 반납을 요청하면 ④문 앞에서 회수가 이뤄지는 방식이다. ⑤수거된 용기는 리턴잇 세척센터에서 7단계 세척 과정을 거쳐 다시 식당에 공급된다.
그러나 실제 이용 경험은 서비스 소개만큼 매끄럽지 않다는 것이 소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가장 큰 불만은 회수 지연이다. 다회용기를 선택해 주문했음에도 며칠이 지나도록 회수 인력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장기간 회수되지 않을 경우 문 앞에 놓인 용기에서 냄새가 나거나 벌레가 생기는 등 위생 문제로도 이어지고 있다.
일부 소비자는 배달앱 고객센터에 여러 차례 문의했으나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답변 외에 정확한 회수 일정이나 담당 주체를 안내받지 못했다고 호소한다.
위생과 세척 과정에 대한 신뢰 부족 역시 문제로 꼽힌다. 리턴잇은 7단계 세척 시스템을 운영한다고 설명하지만, 배달 플랫폼에서는 세척 기준, 오염도 관리 방식, 세척센터의 운영 현황 등 핵심 정보를 확인하기 어렵다.
회수 지연이 겹치면서 “며칠 동안 문 앞에 방치된 용기가 다시 순환되는 구조에서 위생을 완전히 신뢰하기 어렵다”는 불안감도 확산되고 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회수와 관리 책임의 주체가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회수가 지연되거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소비자가 문의해도 음식점-배달원-세척업체-플랫폼 사이에서 역할과 책임이 서로 엇갈리며 정확한 답변을 제시하는 곳이 없다.
음식점은 배달 플랫폼에서 운영하는 서비스라는 이유로 관여하지 않고 플랫폼은 외부 전문업체가 운영을 맡고 있다고 안내하면서도 소비자에게 구체적인 회수 시스템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어 혼선이 지속되고 있다.
정책 측면의 공백도 지적된다. 환경부는 ‘1회용품 사용 줄이기’를 추진하고 있지만 다회용기 서비스에 대한 △회수 의무 △세척 기준 △회수 주기 규정 △정보 공개 의무 등은 법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다.
결국 배달앱이 다회용기 서비스를 확대하더라도 관리 기준을 강제할 제도적 장치가 부재해 소비자는 서비스 품질과 위생 수준을 스스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 플랫폼이 ESG 마케팅 차원에서 다회용기 서비스를 강조하지만 실질적인 관리 체계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배달앱 관계자들은 “다회용기 사업 자체는 지자체에서 운영하며 지자체가 사업 운영을 위해 잇그린 서비스를 선택한 구조”라며 “배달플랫폼은 잇그린과 지자체가 사업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창구 역할만 제공할 뿐, 별도의 관리나 감독은 진행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수거 등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는 잇그린 측은 회수·세척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나 반납 신청 없이 용기를 반납해 발생하는 오인 사례가 종종 있다는 입장이다.
잇그린 관계자는 “서비스 이용 후 회수가 지연되거나 미회수가 발생할 경우 최종 책임은 당사가 지고 있다”며 “회수된 용기는 7단계 세척 시스템을 거치며 이콜랩, 세스코 등 위생 전문업체를 통해 인증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세척 후에는 매주 표면 청결도 검사(ATP)를 실시해 위생 상태를 관리하고 있으며 이 결과를 정기적으로 지자체에 보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회수 지연 문제와 관련해서는 “기본적으로 반납 신청 기준 48시간 이내 회수를 원칙으로 하고 제주 지역은 4시간 이내 회수를 진행한다”며 “간혹 반납 신청 없이 문 앞에 용기를 놓아 발생하는 오인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잇그린 측 사유로 회수가 지연된 경우에는 소정의 쿠폰을 제공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다회용기 배달 서비스가 친환경 정책의 중요한 축임을 인정하면서도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는 회수·세척 관리 체계가 선행되지 않으면 오히려 친환경 정책에 대한 회의감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플랫폼, 지자체, 세척업체 등이 각각 분절된 방식으로 운영하는 현 구조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며 회수 관리, 세척 정보 공개 등의 통합된 관리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자원 낭비를 줄이고 환경을 지키는 측면에서 다회용기 제도 자체는 분명 바람직하다”면서도 “배달용 다회용기는 음식물과 직접 접촉하는 만큼 위생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회수·세척 시스템이 지자체나 유관 기관의 관리 아래 운영돼야 하며 용기 청결뿐 아니라 세척 시설 자체도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용기가 오랫동안 방치되면 악취나 미관 훼손 문제가 생기고 결국 소비자에게 ‘비위생적’이라는 인식이 굳어질 수 있다”며 “사업자 자율에 맡길 게 아니라 행정기관이 책임성 있게 관리·감독하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정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