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까지 국내 건설사 현장에서 피해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물류와 원가, 발주 환경 등에서 직접적인 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동은 국내 건설사 해외사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시장 중 하나다. 해외건설협회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내 건설사들은 현재 중동 9개국에서 약 220개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누적 사업 규모는 1300억 달러(약 191조 3990억 원) 수준이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건설사의 해외 수주액은 472억7500만 달러(약 69조 6029억 원)다. 이 가운데 중동 지역 수주액은 118억1000만 달러(약 17조 3878억 원)로 전체의 약 25%를 차지한다. 해외 건설 시장에서 중동이 핵심 시장으로 꼽히는 이유다.
현재 중동 지역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이라크 등을 중심으로 대형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사업 유형은 석유화학·가스 플랜트, 발전소, 항만, 신도시 인프라 등 대형 EPC 사업이 대부분이다.
건설사들은 현재까지 중동 현장에서 직접적인 피해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비상 대응 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현대건설(대표 이한우)은 중동 지역에서 총 19개 현장을 운영 중이다. 국가별로는 사우디아라비아 13곳, 이라크 3곳, 카타르 1곳, 아랍에미리트(UAE) 1곳, 쿠웨이트 1곳이다.
현대건설은 사우디 아람코 계열 SATORP가 발주한 ‘아미랄 석유화학 프로젝트’ EPC 공사를 수행 중이다. 해당 사업은 사우디 동부 주베일 산업단지에서 추진되는 대형 석유화학 단지 건설 프로젝트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현재까지 현장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며 “임직원과 가족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비상 상황 대응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임직원의 출장과 휴가 등 이동을 전면 제한하고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우디의 초대형 미래도시 사업인 네옴시티 프로젝트에도 국내 건설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대표 오세철)과 현대건설 등이 네옴 ‘더 라인(The Line)’ 구간의 철도 터널 공사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 관계자는 “전체 현장에 현재 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현장은 현지 대사관과 본사와 핫라인을 구축하고 실시간 소통하면서 상황을 예의주시 중”이라고 전했다.
플랜트 분야에서는 삼성E&A(대표 남궁홍)와 GS건설(대표 허윤홍)이 사우디 가스 플랜트 확장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가 추진하는 가스 생산 인프라 확장 사업이다.
삼성E&A 역시 현재까지 현장 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회사 측은 비상 대응 체계를 운영하면서 중동 지역 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인프라 분야에서는 대우건설(대표 김보현)이 이라크 남부 바스라 인근에서 ‘알포(Al-Faw) 신항만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대우건설도 현장 공사에는 직접적인 지장이 없는 상태다. 다만 이라크 현장의 경우 친이란 무장세력의 영향으로 일부 영공이 폐쇄되면서 현장 인력 이동 경로에 제약이 발생한 상황이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현재 공사에는 차질이 없지만 직원 이동 경로 확보를 위해 육상과 해상 등 다양한 대안을 검토하며 상황을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중동에서 진행 중인 국내 건설 프로젝트는 대부분 플랜트와 에너지 인프라 중심 사업이다. 대형 장비와 모듈, 자재를 해상 운송으로 조달하는 경우가 많아 물류 환경 변화에 민감한 구조를 갖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전쟁으로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요인으로 해상 물류 리스크를 꼽고 있다. 중동 원유 수송 핵심 항로인 호르무즈 해협 일대 긴장 고조로 선박 통항과 보험 시장에 변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해상 운송량의 약 20%가 지나가는 전략적 요충지로 알려져 있다. 이 구간에서 선박 운항 차질이 발생할 경우 중동 프로젝트 장비와 자재 운송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해상 전쟁위험보험(War Risk Insurance) 비용 상승 가능성도 변수로 꼽힌다. 보험료가 오르거나 보험 인수가 제한될 경우 선박 운임이 상승하면서 해외 플랜트 프로젝트 물류비 부담이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유가 상승 역시 건설사들에게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 유가가 상승하면 플랜트 현장 장비 연료비와 운송비, 석유화학 기반 건설 자재 가격이 함께 상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중동 프로젝트의 경우 대형 장비와 모듈을 해상 운송으로 조달하는 구조가 많아 물류 차질이 발생할 경우 공정 지연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중동 국가들의 대형 인프라 발주 일정이 늦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중동은 국내 건설사 해외 수주의 핵심 시장인 만큼 신규 해외 수주 환경에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설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