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기획위원회의 개편안이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금융감독원 노조가 금융소비자보호처 분리를 반대하는 성명서를 내는가 하면,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를 필두로 하는 소비자단체에서는 독립된 금융소비자보호기구 설립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현재 금융감독원에 딸려 있는 금융소비자보호업무를 독립시켜 그 기능을 강화하자는 논의는 꽤 오래 전에 제기됐다.
저축은행 사태 이후 지난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가 공약에서 이를 처음 제시했고 뒤이어 문재인 정부도 공약에 포함시킨 바 있다. 보수, 진보 정권을 가리지 않고 '금융소비자보호 강화'를 위해 독립된 조직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정부 조직개편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저축은행 사태에 따른 후속조치로 금감원 내에 준독립기구로 '금융소비자보호처'를 설립했다가 DLF 사태와 사모펀드 사태 등 대형 사고가 잇달아 터지자 문재인 정부에서 금융소비자보호법을 제정하면서 금융소비자보호처장의 지위를 법적으로 보장해준 게 고작이다.
그러나 금융소비자보호처는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검사 권한이 없어 소비자 민원과 분쟁을 단순히 중재, 조정하는 데 그치는 한계를 안고 있다. 검사 기능이 없다보니 과거 사모펀드 사태 관련 분쟁조정 당시 감독·검사 부서와 자료공유 등 협업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는 후문이다.
금감원 내에서도 금융소비자보호처는 힘 없고 고달픈 기피부서로 악명이 높다. 실제 금감원 전직 고위 임원으로부터 인사시즌에 금소처에 지원하는 직원을 본 적이 없다는 푸념을 듣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소비자를 울리는 대형 금융사고는 그치지 않고 있다.
지난 2021년 금소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총 4조6000억 원 규모의 손실이 발생한 홍콩H지수 ELS 사태가 발생했고 올해도 일부 증권사에서 해외부동산펀드 관련 불완전판매 문제가 이어졌다.
금융소비자보호원을 설립하는 대신 도입한 여러 대안의 실효성이 의심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정기획위원회는 금융소비자보호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독립적인 금융소비자보호원을 세우고,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한 저항은 격렬하다.
금감원 노조의 반대 성명에 앞서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이 금융소비자보호원 설립에 반대 입장을 냈고 금융노조 역시 중복규제와 감독 공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금융시장이 갈수록 복잡해지면서 소비자의 대처능력은 더 떨어지고, 대형 금융사고는 끊이질 않는데도 기존 시스템만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에서는 오래 전부터 금융사의 이기심에 희생되는 소비자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방안으로 선진금융시장으로 평가받는 서구에 정착된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 같은 강력한 제도의 도입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재계와 금융계의 강력한 반대로 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은 요원한 상황이고, 그 대안으로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시행됐지만 소비자보호에는 많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국정기획위원회가 금융소비자보호원의 독립을 추진하는 것은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여겨진다.
현재 금융시장은 디지털기술의 진보와 함께 유례 없는 격변기를 겪고 있고, 이로 인해 소비자들은 더욱 취약한 처지에 놓이고 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이정수 사무총장은 “데이터, 플랫폼, AI 기반의 금융시장 환경에서 정보의 비대칭성이 더욱 심화되고 금융소비자 피해도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며 기존의 시스템으로 소비자를 보호하는 데 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고, 한국소비자연맹 강정화 회장은 “지금까지 금융소비자보호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립적인 금융소비자보호기구 신설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소비자를 대변하는 이들이 기존 시스템을 믿을 수 없다고 입을 모으는데, 금융계 종사자와 감독업무 담당자들이 기존 시스템을 지키겠다고 버티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독립된 금융소비자보호기구의 설립을 원하는 이유는 단순명료하다. 기존 금융감독체계가 금융회사의 건전성 감독에 치우쳐 금융소비자보호는 뒷전으로 밀려나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금융사의 건전성 강화는 수익성 극대화를 전제로 하고, 이는 소비자보호와는 상충되는 명제다. 건전성 감독이 우선시 되는 조직에 소비자보호를 맡기는 것을 소비자들이 원할 리 없다.
우려되는 바는 개혁에는 언제나 강력한 저항이 따른다는 점이다. 금융위원회를 지키고 싶어하는 목소리와 금융감독원을 그대로 두기를 바라는 주장이 결합해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강력하게 울리고 있다.
역대 정권의 사례를 보면 집권 초기에 이런 저항을 극복하지 못하면, 개혁은 좌초될 가능성이 높다. 역대 대통령이 직접 약속을 해놓고도 12년 동안 금융소비자보호원 설립이 무산된 것도 그런 과정을 겪은 결과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또 다시 긴 시간을 허송세월할 가능성이 높다.
금융소비자보호원 설립을 반대하는 근거로 '여러 금융 선진국이 통합금융감독기관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그렇다면 반문하고 싶다. 여러 금융선진국이 채택하고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과 집단소송제는 왜 도입하지 않는가?
금융소비자보호원 설립은 금융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강력한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어떻게든 보완하려는 방책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이조차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금융소비자보호는 '허울'에 그칠 뿐이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건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