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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에 속아 개통한 휴대폰 취소 불가?...통신사에 법적 책임 없어 소비자 주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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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에 속아 개통한 휴대폰 취소 불가?...통신사에 법적 책임 없어 소비자 주의 필요
해지 절차 내역·신고서 등 자료 확보 필요
  • 이범희 기자 heebe904@csnews.co.kr
  • 승인 2025.11.13 06: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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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1=부산 해운대구에 거주하는 김 모(남) 씨는 최근 보이스피싱에 속아 A통신사 대리점에서 계약한 휴대전화의 개통 철회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 대리점 측은 “개통 후 단말기를 사용한 경우 환불이 불가능하다”며 김 씨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본사인 A통신사 측은 이후 개통을 철회해줬지만 “일부 소비자는 실제 휴대전화를 개통해 제3자에게 넘기고 그 대가로 현금을 받는 ‘내구재 대출’ 형태로 개통한 뒤 보이스피싱 피해라며 철회를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며 이런 이유로 개통 철회가 원칙적으로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사례2=서울 광진구에 사는 이 모(남)씨는 지난 10월 "통장이 도용돼 기존 휴대전화 대신 새 단말기를 개통해야 한다"는 보이스피싱범에게 속아 B통신사 대리점을 방문했다. 보이스피싱범은 이 씨에게 단말기를 업무용이라 속여 개통하도록 했다. 다음 날 이 씨는 사기라는 것을 깨닫고 경찰서에 신고한 뒤, 대리점을 찾아 철회를 요청했다. 하지만 대리점 측은 “소비자가 직접 와 계약했고 단말기도 개봉했기 때문에 불가하다”고 거절했다. 이 씨는 “보이스피싱에 속아 개통했고 계약 24시간이 안 돼 철회를 요청했는데 안 된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사례3=서울 마포구에 사는 이 모(여)씨는 아들을 사칭한 보이스피싱범에게 개인정보를 넘겼다가 C통신사에서 모르는 휴대전화가 개통돼 약 300만원의 피해를 입었다. 김 씨는 “아들인 척한 사기꾼에게 신분증과 카드 정보를 넘긴 뒤 휴대전화가 개통된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서에서 발급받은 '피해사실 확인서'를 C통신사에 제출했으나 계약 해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C통신사 관계자는 “개통 과정에서 계좌번호와 비밀번호 등 정보가 모두 정상적으로 입력됐다”며 “소비자 주장만 듣고 범죄 피해로 단정짓기는 어렵다”고 입장을 밝혔다.

보이스피싱 범죄가 활개를 치면서 '휴대전화 개통 사기' 피해가 잇따르고 있지만 통신사들은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계약이 이뤄졌다'는 이유로 철회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 소비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현행 제도상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개통 피해는 통신사 귀책으로 분류되지 않아 업체서 거절해도 도리가 없다. 통신업체들도 소비자가 직접 개인정보를 제공해 개통했기 때문에 소비자의 일방적 주장만으로 범죄 피해로 인정해주기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내구재 대출, 일명 '휴대폰깡'에 의도적으로 가담하는 경우도 상당수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보이스피싱 피해가 명명백백하게 밝혀진 경우라면 소비자 피해 구제에 기업도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13일 소비자고발센터(www.goso.co.kr)에 따르면 보이스피싱에 속아 휴대전화가 개통됐지만 철회가 되지 않고 요금도 부과돼 이중 고통을 받고 있다는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소비자는 경찰서에서 '피해사실확인서'를 발급받아 통신사에 해지를 요청하면 철회될 것으로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본인이 직접 개통했다”는 이유로 거부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통신사는 보이스피싱 등 범죄로 인해 개통된 회선은 수사기관 요청이 접수되면 본사 차원에서 차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적 검토 후 회선을 일시 정지하고 이후 강제 해지 절차를 밟는 구조다.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자라는 게 밝혀져도 이제껏 부과된 요금에 대해서는 업체별로 입장이 달랐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피해 사실이 명확히 입증될 경우 이용자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후속 조치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또 다른 통신사 측은 "통신요금이나 미납금 조정은 안타깝지만 법적으로 처리하기 어렵다"고 다른 입장을 내놨다.

소비자 전문가들은 보이스피싱 등 피해 발생 시 △해지 절차 진행 내역과 신고서 △경찰 접수증 등 객관적 자료를 확보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보이스피싱은 명백한 사회적 범죄로 인식돼야 한다”며 “피해자가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휴대폰을 개통당한 경우 사업자도 적극적인 지원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이스피싱 피해가 확인된 상황이라면 통신사 등 사기업도 단순 계약 문제가 아닌 피해자 보호 관점에서 계약 철회나 요금 부담 해소를 지원해야 한다”며 “통신사는 허가 산업으로 소비자 선택권이 제한돼 있는 만큼, 피해 대응에 비협조적일 경우 정부나 관계 부처의 제재가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세준 성신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는 “휴대폰을 개통한 이유와 관계없이 원칙적으로 계약서를 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에는 철회가 가능하다”며 “다만 이미 서비스가 개시됐거나 단말기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에는 전자상거래법상 철회가 제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보이스피싱과 같이 제3자가 부정한 방법으로 접근매체를 이용한 경우, 전자금융거래법 제9조에 따라 금융회사나 전자금융업자가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다”며 “다만 이 조항을 통신서비스 계약 분쟁에 직접 적용할 수 있는지는 신중한 법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사업자가 철회를 거부하려면 재화 가치 감소나 서비스 제공 개시 등 법률상 예외 사유를 명확히 입증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소비자는 분쟁조정 절차나 별도의 민사 구제 수단을 통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범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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