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채용비리에서 지배구조, 급여, 영업관행까지 문제를 삼으면서 금융권을 전면 압박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최흥식 원장 취임 이후 금감원의 행보가 '역대급'이라는 이야기마저 흘러나온다.
금감원은 최근 금융사 지배구조 상시 감시팀을 중심으로 지주회사의 지배구조 점검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사회 구성과 운영, CEO 승계 과정은 물론 내부 통제 체제와 임직원 보상 체계 등의 적정성을 꼼꼼히 따져볼 계획이다.
점검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고 파악될 경우 금융사에 시정 및 개선을 권고하고 필요한 경우 업무 협약을 체결해 개선을 유도할 방침이다. 내부 통제, 리스크 관리 수준이 낮다면 종합 검사를 시행하고, 소비자 피해가 우려될 경우에는 해당 기관과 경영진에 직접 책임을 물을 계획이다.
그동안 금감원이 지배구조를 들여다보기 위해 상시 감시팀을 운영한 적은 없었다.
지배구조법도 손 본다. 현재는 내부통제 기준만 마련돼 있으면 경영진이 특별한 제재를 받지 않는데, 금융당국이 이를 개선하기 위해 법 개정을 준비 중이다.
이에 앞서 채용비리 문제로 다수의 금융사들이 조사를 받았고, 향후 제보에 대한 직접 현장점검 수시화 및 정황확인되면 수사의뢰할 방침이다. '금융사 채용비리 신고센터'도 2월 설치했다.
최근에는 영업현장도 들여다보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 26일부터 서울 강남권의 일부 은행 영업점을 대상으로 대출 검사에 나섰다. 주택담보대출이 크게 늘고 집값이 빠르게 오르는 지역에 대해 '돈줄 조이기'에 나선 것인데 금융당국이 은행 영업점의 대출 현장을 검사하는 일은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검사 대상은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의 신한·우리·KEB하나·NH농협은행 소속 영업점 등 네곳이다. 금융 당국은 이들 지점의 대출 취급 자료를 검토하고, LTV(담보인정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 등 규제를 준수했는지를 살펴볼 예정이다.
금감원은 금리관련해서도 은행의 금리 산출 관련 의사결정 및 내부통제체계, 내규에 따른 목표이익률 등 금리 구성요소 조정의 합리성을 점검해나갈 계획이다.
금융감독원은 더 나아가 올해 금융회사의 영업행위에 대한 검사를 대폭 강화한다. 이를 위해 영업행위 검사에 투입되는 검사인원을 전년보다 42% 더 보강한다. 중대한 위반행위를 한 금융사는 기관과 경영진을 중심으로 엄정히 제재한다. 업무 정지와 영업점 폐쇄 등 중징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금감원은 또 이르면 4월부터 금융지주사와 은행들에 검사역을 상주시키는 '상주검사역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상주 검사역은 은행 등 금융사의 가계 및 기업대출, 재무현황 등을 점검하며 특이사항이 발견되면 금융사와 협의해 위험 여부를 따져본다. 최흥식 금감원장은 "상시감시팀이 있으니까 일단 이거 작동해 보고 제대로 작동 안 될 때 (상주검사역 제도)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금융권에서는 시기가 문제일 뿐 도입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임직원 연봉과 배당에 대해서도 금감원의 압박이 이뤄지고 있다. 금감원은 최근 은행권 임직원들의 성과급이 높다는 이유로 지급 자제를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연말에는 최흥식 금감원장이 은행권에 배당을 자제하고 자본확충을 하라고 밝히기도 했다.
◆ 금융권은 "압박수준 역대급" 호소...금감원장 "여론 의식하지 말고 일하라"
금감원이 이처럼 전방위 공세를 펼치고 있는 것은 본연의 임무를 강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지만, 일각에서는 금융권 길들이기기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최흥식 원장이 금융지주사의 '셀프 연임'을 비롯한 방만경영에 문제를 제기한 가운데 최근에도 유사한 문제가 되풀이된 탓이다.
일례로 지난달 하나금융(회장 김정태)의 차기 회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금감원이 “채용 비리 등의 검사가 진행되고 있으니 선임 절차를 중단하라”고 요청했지만 하나금융은 절차를 강행해 김정태 회장을 차기 회장 후보로 결정했다.
당시 최흥식 원장은 "그 사람들(하나금융)이 권위를 인정 안 하는 것"이라며 불쾌한 속내를 내비쳤다.
KB금융지주(회장 윤종규)이 사외이사들의 교체를 앞두고 이들에 대한 평가결과를 금감원에 허위 보고하는 일도 있었다. KB금융지주는 고의성이 없다고 강조했지만 금감원은 금융회사의 고의적인 자료제출 지연과 허위자료 제출 등 검사방해 행위에 대해서는 과태료 등 엄정 대처하겠다고 못박았다.
금감원의 압박이 이어지면서 금융사들은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사들이 원래는 금감원 말을 잘 들었는데 허위자료라던가, 하나금융 회추위 등의 사례가 발생하면서 금감원이 뿔이 난 것 같다"며 "예전에는 금감원이 조용히 불러서 지시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지금은 대놓고 비판하고 지시하고 규제하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인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금감원의 압박이 역대급"이라며 "지금도 각종 검사에 해당 부서 직원들은 정신을 못차릴 지경인데 당국의 검사 인력이 본점 등에 상주해 이것저것을 시키면 어떻게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하지만 금융권에 대한 강력한 공세는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최흥식 금감원장은 최근 관치금융 논란에도 불구하고 단호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최 원장은 최근 새 출발 결의대회를 열고 임직원들을 향해 "외부 여론에 휩쓸리지 말고 전문가적 판단만으로 법과 원칙에 따라 우리 권리를 행사하자"고 말했다. 더 이상 관치 논란 등에 위축되지 않겠다는 것이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국헌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