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
경기도에 사는 백 모(여)씨는 지난 1월 말 장 시작에 맞춰 보유한 주식을 시초가에 매도한 후 재매수하려 했다. 하지만 당시 이용 중이던 중견 증권사 A사의 MTS가 시스템 불안정으로 1시간 이상 중단됨에 따라 적절한 매도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전날 종가가 8470원이었던 OO종목 2000주를 당일 시초가인 9840원에 매도하려 했는데 전산장애로 실패한 것.증권사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당일 매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상은 받지 못했다. 백 씨는 "증권사에서는 오류가 발생한 당일 매도하지 않았다고 보상할 수 없다고 하는데, 당시는 이미 보유한 종목의 주가가 저점에 내려왔기 때문에 매도할 수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A증권은 "당시 주문 트래픽 문제로 전산장애가 발생했으며 피해를 본 고객에게 사내 기준에 의해 보상절차를 따랐다"고 전했다.#사례2 = 경기도에 사는 장 모(남)씨는 지난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B증권사 MTS에서 장 시작에 맞춰 주식매매를 시도했다. 하지만 증시 개장 시점인 9시부터 약 30여분 간 매수·매도 창이 비활성화돼 온라인에서 국내주식 거래를 할 수 없는 불편을 겪었다. 장 씨는 "당시 보상 신청을 하려 했으나 고객센터에서는 보상기준이 없다고 했다"며 "추후 동일한 상황일때 어떻게 해야 되는지 물어봤을 때도 확인해줄 수 없다고만 답변했다"고 말했다. B증권사는 "주문 불안정 문제로 손실을 겪은 고객이 민원을 제기하면 내부 기준에 따라 보상한다"고 밝혔다.
#사례3 = 대전에 사는 신 모(남)씨는 지난해 대형 증권사인 C사 MTS에서 보유하고 있던 해외 레버리지 ETF 전량을 매도하려 했다. 하지만 당시 C증권에서 발생한 전산장애로 주문이 미접수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신 씨는 "당시 발생한 전산장애로 인해 평가손익이 50% 가까이 하락해 약 80만 원가량 손해를 입었다"며 "증권사에서 장애시간 동안 주문기록이 없고 체결이 불가능했던 가격이라는 이유로 보상 신청을 거절했다"고 밝혔다. C증권사는 "MTS·홈페이지를 통해 전산장애로 피해를 입은 고객이 보상을 신청하면 대상에 해당할 경우 보상을 진행했다"는 입장이다.
증권사 HTS(홈 트레이딩 시스템)와 MTS(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접속장애로 투자자들이 제 때 주식을 매수 혹은 매도하지 못해 손실이 발생하고 있지만 엄격한 보상 기준과 복잡한 절차 때문에 피해를 입어도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소비자 불만이 커지고 있다.
접속장애로 주문이 불가능하거나 주문 체결이 지연돼 손실을 입더라도 증권사에서는 전화주문 등 대체 주문을 넣지 않는 경우 보상 대상에서 아예 제외시키는 등 지나치게 증권사 편의주의적인 규정을 적용한다는 지적이다. 보상한다 해도 기준이 까다롭고 소비자가 주장하는 피해 손실액에 미치지 못해 불만을 잠재우기는 역부족이다.
◆ 증권사 과실로 장애 발생했는데 입증도 소비자가 하라고? 증권사-투자자 핑퐁싸움
주요 증권사들은 주문장애 보상 기준을 '증권사 전산시스템 장애로 인해 어떠한 방법으로도 주문이 불가능한 경우'로 한정짓고 있다. 단순 시세지연·체결지연 등은 주문장애에 포함하지 않고 있다.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키움증권 △메리츠증권 △LS증권 등 대부분 증권사가 동일한 규정을 두고 있다.
증권사 자체 과실 뿐만 아니라 한국거래소·코스콤 등 국내외 유관기관에서의 시스템 문제로 전산장애가 발생한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보상 대상에서 제외된다. 일부 증권사는 해외주식 거래시 현지 브로커·거래소·데이터 제공사 때문에 전산장애가 발생해도 보상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안내하고 있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이러한 보상 규정이 지나치게 증권사 편의주의적인 약관이라고 꼬집고 있다.

짧은 시간에도 주가가 급등락을 반복하는 주식시장 특성상 접속장애로 인해 주식 매도가 지연돼 평가손실이 발생할 수 있음에도 증권사에서는 시세지연, 체결지연 등을 주문장애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삼성증권은 시세지연·체결지연으로 고객이 의도한 주식을 주문하지 못한 경우 객관적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상황에 한해 보상 여부를 검토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신한투자증권도 장애 유형의 특성, 장애발생의 구체적인 상황 등을 감안해 장애로 처리할 만한 합리적인 사유와 근거가 있다면 주문장애로 간주한다는 입장이다.
증권사들은 고객센터 ,영업점 등을 통해 비상 주문이 가능하며 전화연결이 안 되는 등 이유로 비상주문을 못한 경우 보상 신청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비상주문이 보상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전화기록에 포함되기 때문에 비상주문 장애로 인해 주문이 불가능하더라도 고객센터나 지점 직원에게 주문내용을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전산장애로 체결이 이뤄지지 않거나 체결이 지연된 고객의 주문을 전화 기록을 비롯한 증명방법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보상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고객센터나 지점에 비상주문을 시도하더라도 전산장애로 비상주문 문의가 폭증해 원하는 시점에 매매를 체결하지 못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전산장애로 인한 보상 산정 기준에도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증권사에서는 △전산장애 기간 동안 체결 가능한 주문인 경우 △고객의 매매의사를 증빙할 수 있는 경우 △더 불리한 가격에 주문이 체결돼 손실이 발생한 경우에만 보상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전산장애 후 고객센터로 전화가 몰리는 상황에서도 매도 주문을 통해 손실을 실현해야 하는 데다가 전화는 물론 사진·캡쳐화면, 동영상 등을 통해 주문기록을 증명해야 한다는 불편이 있다.
산정액 계산 방식 역시 증권사마다 상이하다. 미래에셋증권은 장애복구 시점의 가격에서 장애발생 시간 동안 고객의 주문을 확인할 수 있는 시점의 주문가격을 차감해 보상금액을 결정한다.
반면 한국투자증권은 장애복구 시점에서 매도할 경우 실제 매도가에서 전화기록을 남긴 시점의 주문가격을 차감해 보상금액을 정한다. 장애복구 시점 이후에 매도할 경우 장애복구 시점의 가격을 기준으로 한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엄격한 보상기준, 복잡한 절차로 인해 피해를 겪어도 아예 보상 신청을 포기하기 일쑤다.
◆ 최근 5년간 증권사 전산사고 201건...절반은 보상 못받아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21년~2025년) 자기자본 기준 국내 10대 증권사의 전산장애 발생건수는 총 201건이었다. 이 중 피해 고객에 대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103건(51.2%)에 달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주식 주문 체결 결과는 불과 0.001초 차이로 체결과 미체결이 갈리는데 지연된 증권사 시스템 문제로 인한 미체결 피해를 소비자가 떠안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자 소비자보호 정신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증권업계는 증권사 이외의 사유로 발생한 전산장애, 단순 지연으로 인한 피해의 경우 보상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한국거래소의 시스템 오류처럼 증권사 개별의 문제가 아닌 모든 증권사가 다 같이 겪는 문제의 경우에도 보상해주기는 쉽지 않다"며 "명확히 증권사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 주문이 늦게 들어오는 경우가 아닌 이상은 단순 주문 지연으로 보상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전자금융거래법에 따르면 전자금융업자는 전산장애 사고로 이용자에게 손해가 발생할 경우 이를 배상할 책임을 지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피해 보상 관련 규정이나 가이드라인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이 때문에 국내 증시 활성화로 투자자가 증가하는 가운데 해마다 전산장애 피해를 겪는 투자자들도 늘어남에 따라 명확하고 투자자 친화적인 전산장애 보상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이정민 한국금융소비자보호재단 연구위원은 "증권사 전산시스템에 대한 문제점이 많아지면서 주문 취소·실패 이외에 시세 체결 지연 문제를 겪는 투자자들이 적지 않다"며 "소비자 편익을 고려할 수 있는 전산장애 보상에 대한 기준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철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