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1일 부동산 자산운용사 이지스자산운용의 지분 매각에 대한 본입찰에 한화생명, 흥국생명, 사모펀드인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 등이 참여했다.
이지스자산운용은 국내 대표 부동산 자산운용사로 2010년 3월 설립됐으며 오피스, 물류센터, 데이터센터 등 상업용 부동산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올해 3분기 기준 이지스자산운용의 자산총계는 1조880억 원, 총 자산규모(AUM)는 지난해 말 기준 67조 원 수준이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흥국생명은 본입찰에서 이지스자산운용에 1조 원이 넘는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시된 가격 중 최고가에 해당한다.
지난 예비입찰 당시 한화생명이 제시한 금액은 8000억 원 가량으로 최고가였으나 본입찰에서 흥국생명이 2000억원을 추가하며 최고가를 갱신했다. 이지스자산운용의 시장가치가 8000억 원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흥국생명과 한화생명 모두 시장가치를 뛰어넘는 가격을 제시한 셈이다.
흥국생명은 잇따른 자금 확보를 통해 인수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흥국생명은 지난달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에 위치한 본사 건물을 흥국코어리츠에 7193억 원에 매각한 데 이어 2000억 원 규모의 후순위채 발행에 나서 총 9000억 원 이상의 자금을 마련했다.
반면 한화생명은 안정적인 재무지표를 바탕으로 인수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노리고 있다. 올해 3분기 한화생명의 자산총계는 178조4829억 원으로 23조9687억 원의 흥국생명보다 약 7.5배 더 많다.
특히 한화생명은 최근 오너 3세인 김동원 부사장 주도로 연이은 인수합병을 통해 금융그룹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점도 인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한화생명은 지난 6월 인도네시아 노부은행 지분 40%를 투자를 마무리했으며 올해 7월엔 미국 증권사 벨로시티의 지분 75% 인수 절차를 마무리한 바 있다.
보험업계에선 자산운용사를 인수함으로써 부동산 등 대체투자를 통해 수익성을 다각화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인수 시 국내외 부동산 딜 구조화, 리츠 설계, 대체투자 전문 인력을 바탕으로 보험사 등 장기 자금을 운용하며 시너지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부동산 전문 자산운용사 선두주자로 평가받고 있다. 공모·사모펀드와 리츠를 중심으로 자산을 운용하고 상업용 부동산 및 글로벌 부동산 투자에 특화돼 있다. 또한 기관투자 기반의 포트폴리오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현재 보험산업은 저출산과 고령화 등으로 인해 고객 확보가 한정적인 가운데 보험 본업은 출혈 경쟁으로 인해 성장세가 둔화된 상황이다.
올해 3분기 기준 대형 생명보험사들의 보험손익은 일제히 감소했다. 대형 생명보험사별로 살펴보면 삼성생명은 전년 동기 대비 6.7% 감소한 1조1069억 원을 기록했고 교보생명은 4102억 원으로 전년 대비 24.7% 줄었다. 한화생명은 절반 가량 감소한 3846억 원의 보험손익을 기록했다. 인수전에 참여한 흥국생명 또한 보험손익이 20.8% 줄어든 715억 원으로 나타났다.
보험손익 악화에 맞서기 위해 일부 보험사들은 수익성 다각화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 실제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은 자산운용사를 인수한 바 있다. 교보생명은 2023년 파빌리온자산운용을 인수했으며 삼성생명은 지난 9월 유럽 사모펀드 운용사 헤이핀캐피털매니지먼트 지분을 인수했다.
대형 생명보험사 관계자는 "생명보험사의 경우 영업이나 상품으로는 포화상태인데 새 먹거리 사업으로선 자산운용밖에 할 수 없는 상태다"라며 "보험사들은 자산이 많으니까 자산운용사 인수를 통해서 시너지를 낼 수 있어 인수전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대형 생명보험사 관계자도 "이지스자산운용은 부동산 쪽에 특화돼 있다 보니 보험사들이 채권 중심의 자산운용을 하는 데에 있어 보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이지스자산운용은 오피스 등을 많이 가지고 있으니 자산운용수익률을 높이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다만 한화, 흥국생명 모두 그룹 내 리스크로 인해 인수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금융사의 대주주가 되기 위해선 금융위원회로부터 대주주 적격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대주주의 재무능력이나 사회적 신용 등을 심사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한화생명이 미국 증권사 벨로시티 지분 인수를 완료하고 한 달 뒤 벨로시티는 미국 금융당국으로부터 내부통제 부실 및 규제 위반에 따라 100만 달러의 벌금을 받은 바 있다.
이에 한화생명은 벨로시티 인수 전 실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고 이지스자산운용 또한 실사 과정에서 펀드 손실 및 우발채무가 예상보다 크다는 분석이 나왔다.
흥국생명은 최대주주인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횡령·배임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그는 계열사 매각 과정에서 위장 계열사를 이용한 2000억 원대 손해를 유발했고 골프장 회원권 강매 의혹, 교환사채 발행 관련 배임 미수 혐의 등 혐의를 받았다.
이로 인해 이지스자산운용 인수 시 필요한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서 흥국생명이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이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서현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