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6월 20일 서울 종로2가 덕원빌딩에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 박사는 “건강한 국민, 병들지 아니한 국민만이 주권을 누릴 수가 있는 것”이라는 어록을 남겼다.
사명은 창업주 성인 ‘유’, 대한민국과 국민을 향한 창업정신을 담은 ‘한’, 근대기 서양 상품을 취급하는 무역회사를 뜻하는 ‘양행’을 결합했다.
글로벌 컨설팅사인 맥킨지에 따르면 2020년 이후 기업의 평균 수명은 20년이 못미친다고 한다. 유한양행은 이보다 5배 이상 존속했고 이제는 글로벌 빅파마로 도약하기 위한 새로운 여정을 준비하고 있다.
초기 유한양행은 해외에서 검증된 의약품을 국내에 들여오는 방식으로 시장을 개척했다. 유일한 박사는 “건강한 국민이 있어야 나라의 미래도 있다”는 신념 아래 의약품 공급을 단순한 상거래에서 나아가 국민 보건에 기여하는 사업으로 봤다.
일제강점기라는 불리한 사업 환경 속에서도 독일에서 개발된 항균제 ‘프론토실’ 등을 들여와 한국인과 외국인 선교사가 운영하는 병원을 중심으로 영업망을 넓혔다.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의약품 조달을 위해 의약품을 개발하고 제조설비도 갖췄다. 유한양행은 1933년 유일한의 의학박사 출신 부인 호미리 여사의 도움을 받아 연고 형태 진통소염제 ‘안티푸라민’을 개발해 자체 브랜드 제품으로 공급을 시작했다.

1936년에는 경기도 소사에 공장을 건립했다. 유일한 박사는 해외에서 의약품을 도입하면서 다수 글로벌 기업들과 협업해 생활건강, 원료, 동물의약품 등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고, 제조·품질·영업 역량을 두루 갖춘 제약사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닦았다.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하여야 한다”는 창업주의 말은 유한양행의 전문경영인 체제 기틀이 됐다.
유일한 박사는 부사장까지 했던 장남 유일선을 회사에서 떠나게 했고, 1969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혈연관계가 없는 조권순 전무에게 대표 자리를 넘겼다. 개인 소유 주식 1만7000주를 연세대와 보건장학회에 기증하고, 다른 5만6000주는 교육·장학사업 확대에 기부하는 등 본인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현재 유한양행 최대주주는 공익법인인 유한재단으로 지분율은 15.9%다. 이외 유한학원 7.5%, 국민연금공단 6.8% 보유하고 있다.
유일한 박사 사후 유한양행은 대표직 3년 임기, 최대 1회 연임인 전문경영인 체제를 이어오고 있다.
◆도입약으로 업계 최초 조 단위 매출...한 자릿수 낮은 영업이익률은 약점
유한양행은 2010년대 들어 베링거인겔하임의 고혈압 복합제 ‘트윈스타’, 길리어드의 B형간염 치료제 ‘비리어드’, 일라이 릴리의 당뇨 치료제 ‘트라젠타’ 국내 판권을 획득하면서 외형을 키웠다. 이렇게 들여온 약들은 주요 품목 중 매출 비중 상위 품목에 자리 잡았다.
이를 발판으로 창립 88년 만인 2014년 업계 최초로 연매출 1조 원을 기록했다. 10년 뒤인 2024년에는 매출 2조 원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이 역시 업계 최초다. 현재까지 전통제약사 중 2조 원대 매출을 올린 건 유한양행 뿐이다.

다만 외부에서 약을 들여와 파는 특성상 수수료 등 원개발사와 수익 배분 구조, 높은 매출 원가 등으로 영업이익률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2020년대 유한양행의 영업이익은 5% 이하로 경쟁사인 대웅제약, 한미약품이 두 자릿수 이익률을 내는 데 비하면 높지 않다.
유한양행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2020년대 들어 외부 제약사, 바이오 기업으로부터 후보물질을 도입하거나 공동 연구개발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추진하고 있다. 신약을 개발해 글로벌 상업화 및 기술이전을 통해 수익 규모를 늘리려는 전략이다.
오픈 이노베이션 성과는 국산 31호 신약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 상업화를 통해 일부 가시화됐다.

렉라자는 유한양행의 수익 구조를 바꿀 핵심 자산으로 꼽힌다. 국내에서는 유한양행이 직접 판매 매출을 인식하고, 해외에서는 병용요법 매출에 따라 로열티를 받는 구조다.
유한양행은 얀센과의 기술이전 계약으로 이미 계약금과 일부 마일스톤을 수령했고, 추가 수령 가능 마일스톤이 6억8000만 달러(한화 약 1조 원)다. 여기에 순매출액의 일정 비율로 받는 로열티가 더해질 수 있다. 증권가에서는 글로벌 처방 확대 속도에 따라 유한양행의 렉라자 관련 로열티 수익이 중장기적으로 연간 수백억 원에서 1000억 원 이상 규모로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정현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