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2단계 입법을 취재하던 중 업계 고위 관계자에게 업황 부진 속 향후 사업과 법제화 이후 변화를 묻자 돌아온 답이었다. 새로운 사업을 몰라서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준비한 것은 많지만 제도 환경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푸념이었다.
처음에는 업황 부진에서 나온 한숨 정도로 들렸다. 하지만 여러 가상자산 거래소를 추가로 취재해 보니 얘기가 달랐다. 사업 아이디어가 없어 움직이지 않는 것과 무엇을 해도 되는지 알 수 없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이런 답답함의 근본적인 원인은 길어지는 2단계 입법 논의에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2단계 입법 논의에 본격적으로 착수하면서 사업자 진입·영업 행위 규제와 상장·공시제도, 스테이블코인 규율 방안 등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당시 2025년 하반기 구체적인 법안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지난달까지도 가상자산 2단계 입법인 (가칭) 디지털자산법 정부안은 논의 중이다. 거래소 대주주 지분 상한도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거래소들이 마냥 기다리기에는 경영환경도 녹록지 않다. 올해 상반기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의 연결 기준 영업수익은 4080억 원으로 전년 동기 8019억 원 대비 49.1% 감소했다. 빗썸도 같은 기간 영업수익이 3291억 원에서 1687억 원으로 48.7% 줄었다. 빗썸은 심지어 순이익이 적자전환됐다. 가상자산 거래 위축으로 거래수수료 수입이 줄어든 탓이다.
국내 거래소들은 개인 현물거래 수수료에 수익이 크게 편중돼 있어 거래량이 줄면 실적도 함께 흔들리는 구조다. 입법 지연이 실적 악화의 원인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거래소로서는 법인 거래나 신규 서비스 등으로 수익원을 넓혀야 할 필요성이 한층 커진 셈이다.
정작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기는 쉽지 않다. 한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뭘 해야 할지, 뭘 하지 말아야 할지를 모른다”고도 현 상황을 진단하기도 했다.
법안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인력과 비용을 들여 서비스를 개발했다가 향후 허용되지 않을 수도 있어 “시도조차 못 한다”는 것이다. 거래수수료 의존도를 낮춰야 할 필요성은 커지고 있는데 새로운 수익원을 만들 사업의 경계는 여전히 불분명한 셈이다.

2단계 입법이 업계에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금융위가 처음 제시한 검토 방향에는 가상자산 매매·중개와 보관·관리, 자문·평가 등 다양한 업종을 살펴보고 사업자의 진입·영업 행위 규제를 정비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가상자산업계에서는 소비자 보호 중심의 1단계에 이어 발행·공시·사업자 분류까지 포괄하는 규율 체계를 논의하는 방향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제도의 불확실성을 2단계 법안에서 해소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은 할 수 없는지, 어떤 요건을 갖춰야 새로운 사업에 진입할 수 있는지를 예측할 수 있게 해달라는 얘기다.
물론 2단계 입법 하나로 가상자산업계의 모든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업계 관계자 역시 법이 만들어진다고 갑자기 새로운 사업이 쏟아질 것으로 보지는 않았다. 다만 알려진 것보다 준비한 사업은 많지만 제도 환경이 갖춰지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법 하나가 나온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도 결국 이 지점일 것이다. 준비해 놓고도 계속 기다리는 시장이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움직일 수 있는 시장을 만드는 것. 애초 예고했던 법안 마련 시점이 이미 지난 지금, 2단계 입법이 언제 어떤 기준을 제시할지가 업계가 정부안을 기다리는 이유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태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