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부터는 민첩하게 오전 9시까지 은행 점포를 방문해도 잔금 처리나 대출 등의 서비스를 받을 수 없게 된다.
지난 28일 금융권 노사가 산별중앙교섭에서 은행 점포 영업시간을 30분 단축하기로 협의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은행 점포 개점 시간이 현행 오전 9시에서 9시 30분으로 30분 늦춰지게 됐다. 폐점 시간은 오후 4시 그대로다.
심지어 금요일에는 영업시간 종료 30분 전부터 고객을 더 받지 않는 ‘라스트콜’ 제도도 도입된다. 금요일 오후에는 3시30분 이후에 은행 점포를 가더라도 업무를 볼 수 없다는 의미다.

과거에는 통장 하나 만드는 데도 시간을 들여 은행 점포를 방문해야 했지만 비대면 금융이 확산된 요즘에는 스마트폰 하나로 계좌이체부터 대출 신청, 상품 비교는 물론 가입까지 앱을 통해 가능하다.
다만 이는 스마트폰에 익숙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비대면 금융이 대세가 된지 10년 이상이 지났지만 디지털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금융소외계층은 여전하다.
점포 영업시간도 줄어들고 있지만 이들을 위한 금융창구가 되어 줄 은행 점포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국내 은행 지점 수는 2023년 6월 4884개에서 올해 6월 4482개로 4년 동안 402개 줄었다. 금융 취약계층을 위한 오프라인 점포 감소에 영업시간마저 단축될 경우 이들은 점점 더 한계상황으로 몰리게 된다.
은행 영업시간 단축은 어르신 뿐만 아니라 소상공인에게도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 식당 주인, 시장 상인처럼 현금을 많이 다루는 소상공인들은 대개 오전에 은행에서 입출금, 잔금 처리 등의 업무를 본 다음 오전에 업무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은행 영업 개시 시간이 늦어지면 자영업자들이 애로사항을 겪을 수 있다.
비대면 금융의 시대라 해서 모든 은행 업무를 100% 비대면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주택 매매를 위해 디딤돌대출이나 보금자리론 등을 이용할 경우 대출 약정 및 실행을 위해 은행 점포를 방문해야 한다. 은행 영업시간이 30분 줄어들 경우 이러한 정책대출 이용 과정에서 대출금을 수령받고 잔금을 치르는 데 불편이 야기될 수 있다.
금융노조에서 매년 제기하고 있는 주 4.5일제 도입은 이번 잠정 합의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주 4.5일제 도입까지 확산될 경우 금융 소외계층의 금융 인프라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새벽부터 깨어나 오전 일찍 출근해 은행 점포에서 고객을 맞이하고 점포가 문을 닫은 뒤에도 결산 업무를 해야 하는 은행원들의 불편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은행권 노사가 직원들의 출퇴근 시간대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금융 서비스를 받는 고객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영됐는지는 의문이다.
은행 영업시간 단축으로 제때 은행 업무를 처리하지 못하는 고객을 위해 오후 5~6시까지 연장영업을 하는 점포 확대, 전통시장이나 고령층 밀집 지역처럼 금융이 필요한 곳으로 달려가는 이동점포 확대 등을 통해 고객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도 함께 검토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은행은 자본주의 체제 아래 움직이는 사기업이기도 하지만 한 지역, 국가의 자금을 유통해주는 만큼 강력한 공공서비스이기도 하다. 온국민이 이용해야하는 서비스를 그저 노사 합의로 줄이고 축소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은행들의 편의와 은행원들의 복지만이 잣대가 되어야 할까? 서비스의 객체인 소비자에대한 배려가 없는 노사 합의가 심히 유감스럽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철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