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의 배터리 사업부 물적 분할은 지난 2020년 뜨거운 이슈였다. 미래 성장을 내건 회사 측과 ‘개미(소액 개인 투자자) 무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치열하게 맞붙었다. 분할 5년을 맞은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의 현주소와 미래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LG그룹이 2020년 12월 1일 단행한 LG화학 배터리 사업부 분할은 5년이 지난 현재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LG에너지솔루션(대표 김동명)은 배터리 전문성을 살린다는 취지에 맞게 그룹 캐시카우 역할을 하며 시장에 안착한 반면 LG화학(대표 신학철)은 시가총액이 28조2016억 원으로 반토막 나며 소액주주 우려가 그대로 현실이 됐다.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의 시총 합계는 129조9413억 원(19일 종가 기준)으로 분할 전 57조8151억 원에 비해 2.4배 커졌다.
LG에너지솔루션 시총은 102조3750억 원으로 4년여간 굴곡이 있었지만 2022년 1월 상장 때와 큰 차이가 없다. 코스피 시장 3위 지위도 그대로다.
2022년 1월 단군 이래 최대 IPO(기업공개)로 불리던 LG에너지솔루션이 상장하자 LG그룹은 시총 200조 시대를 열었다. 2005년 이후 17년 만에 재계 그룹사 시총 2위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사업부로 있을 때보다 매년 높은 매출과 영업이익을 냈다. 2023년에는 2조 원 이상의 영업이익으로 그룹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면서 전문 분야에 집중하겠다는 청사진이 실현됐다. 총자산은 잇따른 공장 건설 등으로 3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 전기차 캐즘 여파로 실적이 잠시 주춤했지만, 올해는 전기차 배터리 장기 수주에 나서고 있고 에너지저장장치(ESS) 분야를 강화하며 경쟁사들이 대규모 적자를 내는 상황에서도 조 단위 영업이익을 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전기차 캐즘 딛고 배터리 장기 일감 수주...수주 잔고 150조→400조 원
LG에너지솔루션의 수주 잔고는 2020년 150조 원에서 현재 400조 원으로 늘었다. 2023년 말에는 500조 원에 이르기도 했다.
분사 후 매출이 두 배가량 늘고 영업이익도 눈에 띄게 증가세를 기록한 이유다.
주력인 전기차 배터리는 수요 침체를 딛고 올해부터 장기 물량을 대거 확보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14일 테슬라 전기차에 탑재될 배터리 양극재 공급에 성공했다. 3조8000억 원 규모로 알려졌다. 양극재는 배터리 원가의 약 40%를 차지하는 핵심소재다.
유럽 최대 완성차 그룹 중 하나인 프랑스 르노와도 올해 하반기부터 2030년까지 5년간 전기차용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공급하는 계약을 위해 노력 중이다. 계약이 현실화되면 국내 배터리사 중 처음으로 유럽 내 LFP 배터리 시장에 본격 진출하는 게 된다.
지난 9월에는 벤츠와 총 107GWh(미국 75GWh, 유럽 32GWh) 규모의 배터리 공급 계약을 맺었다. 미국향 물량은 2029년 7월 30일부터 2037년 말까지 9년간 공급된다. 유럽향 물량은 2026년 하반기부터 공급돼 실적에 반영될 예정이다.
지난해 10월 북미 지역 내에서 체결한 2028~2038년 50.5GWh 규모의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한 바 있는데, 이와는 별개의 신규 프로젝트로 알려졌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대표는 지난 13일 한국을 방한한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 회장과 만나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한 만큼 추가 수주도 기대된다.
배터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글로벌 수요가 탄탄한 프리미엄 완성차 업체와의 협력이 절실한 상황에서 단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부터 2035년까지 일본 토요타에 연간 20GWh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는 장기 계약을 실행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수주의 실적 실현을 위해 북미 글로벌 완성차와 협력해 공급망을 강화했다.
2021년 4월 GM과 미국 테네시주 스프링힐에 제2 얼티엄셀즈 공장 설립한 데 이어 2022년 3월에는 스텔란티스와 캐나다 온타리오주 윈저에 ‘넥스트스타 에너지’를 신설했다.
2022년 8월에는 혼다와 6조3050억 원을 공동 투자해 미국 내 배터리 합작공장 설립에 나서기도 했다.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완공된 공장은 올해 말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공장이 전면 가동되면 고성능 순수 전기차 50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다.
◆전기차 캐즘, 에너지저장장치(ESS)로 무게 추 옮겨 대응
LG에너지솔루션은 분사 4년 차인 지난해 10월 처음으로 ‘Empower Every Possibility(에너지로 세상을 깨우다)’라는 중장기 비전을 제시했다.
단순 배터리 제조를 넘어 에너지를 저장하고 이동 시켜주는 에너지 순환 생태계 중심에 서서 무궁무진한 비즈니스의 기회를 열어 나가겠다는 뜻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비전 제시는 전기차 캐즘과 원자재 가격 하락에 따른 판가 하락 등으로 실적 파고가 큰 상황에서 시의적절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3년 33조 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는데 지난해와 올해는 25조 원 안팎으로 떨어졌다. 영업이익도 5700억 원에서 2조1600억 원으로 연간 편차가 컸다.
실적 흐름에 따라 LG에너지솔루션 주가 그래프도 비슷한 궤적을 그렸다. 2022년 11월 18일 62만8000원으로 고점을 찍었고, 2023년 10월에는 40만 원 아래로 떨어졌다. 이후 시장 불확실성 속에서 한동안 30만 원대에 머물렀다. 지난 5월에는 26만 원대로 떨어졌으나 현재는 다시 50만 원을 바라보는 수준으로 올라왔다.
중장기 비전에 따라 사업의 무게중심을 전기차용 배터리에서 ESS로 빠르게 옮기면서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9월 7조2000억 원을 투입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ESS용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양산 체제를 갖췄다. 공장은 지난해 4월 일찌감치 착공했다. 미국에서 LG에너지솔루션의 두 번째 단독 공장이다.
또 미국 미시간주 홀랜드 공장과 폴란드 브로츠와프 공장의 전기차 배터리 라인을 ESS 전용으로 전환하는 등 리밸런싱 전략을 펼쳤다.
홀랜드 공장은 2026년 완공 예정이었던 애리조나 ESS 전용 신공장을 대체하기 위해 기존 전기차 배터리 라인을 전환하는 방식으로 북미 ESS 생산 일정을 약 1년 앞당겼다. 지난 6월부터 LFP 기반 ESS 배터리 양산에 돌입했다.
폴란드 브로츠와프 공장 역시 지난 3월부터 기존 전기차 배터리 라인의 일부를 ESS 전용으로 전환했다. 이를 통해 생산 효율성을 높이고 유럽 내 ESS 수요 증가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올해 삼성SDI와 SK온이 각각 1조6000억 원, 5000억 원 이상의 적자를 낼 것으로 전망되는 것과 대조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ESS를 앞세워 올해 1조5000억 원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5조 원 이상의 현금을 확보하고 있으며 부채비율도 비교적 우량한 상태다.
다만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대표가 중장기 비전을 통해 제시한 실적 목표 달성까지는 갈 길이 멀다.
김 대표는 2028년까지 2023년 대비 매출 두 배 이상 확대, EBITDA(상각전영업이익) 마진을 10%대 중반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내놓았다.
2023년 실적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목표 달성을 위해 2028년까지 매출은 67조 원 이상, EBITDA 마진은 8~10조 원을 기록해야 한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분사 후 5년 동안 전기차 시장 둔화와 투자 환경 변화로 인한 부침이 있었지만 사업 구조 재정비로 대응했고 ESS 등 차세대 배터리를 중심으로 성장해 나갈 계획”이라며 “미국 ESS 생산 물량 확대와 소형전지 신제품 양산 효과, 전사적 비용 절감 노력을 바탕으로 실적이 점차 개선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선다혜 기자]
